트라우마는 왜 반복되는지 심리학적으로 트라우마가 악순환되는 이유와 그 메커니즘, 무의식의 역할, 대인관계에서의 반복 패턴까지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1. 무의식 속 트라우마의 흔적, 그리고 반복의 시작
트라우마는 단순히 한 번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트라우마는 인간의 심리 깊숙한 곳에 뿌리내려 시간이 지나도 영향을 주며 반복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하도록 만든다.
이는 단지 외부 환경 탓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무의식적 패턴이 작동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프로이트 이후 심리학자들은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 현상을 설명해 왔다.
반복 강박이란 과거에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려는 것으로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다시 마주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아동기 때 감정적으로 무시당한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도 무관심하거나 냉정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상처를 다시 재현하여 이번에는 다르게 끝내고자 하는 무의식적 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종종 실패로 끝나고, 결과적으로는 트라우마를 반복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심리 내면에서 구조화된 패턴이며,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같은 고통은 여러 모습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
2. 회피와 억압, 회복을 방해하는 심리적 방어기제
트라우마가 반복되는 또 다른 심리학적 이유는 회피와 억압이라는 방어기제 때문이다.
인간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트라우마는 너무 강렬한 감정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직면하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밀어낸다.
문제는 이 억압된 감정과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내면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의식적으로는 잊은 줄 알지만, 비슷한 상황에 마주쳤을 때 자동적으로 불안, 분노, 무력감 같은 감정이 다시 솟구치며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과거에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신뢰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 전에 이미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것은 실제로 상대와 건강한 관계를 맺을 기회를 차단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역시 사람은 믿을 수 없어”라는 식의 자기 확증적 사고를 강화시킨다.
이처럼 억압과 회피는 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심리적 장치지만, 동시에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못하고 반복되는 핵심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억압된 감정은 인식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삶의 표면으로 떠오르며 우리를 괴롭힌다.
3. 대인관계에서 드러나는 트라우마의 반복 패턴
트라우마는 혼자만의 내면에서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빈번하게 반복되는 무대는 바로 ‘대인관계’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상처를 되살리는 상대를 찾아가거나, 비슷한 갈등 상황을 재현하며 자신도 모르게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투사(projective identification)와 같은 개념으로 설명된다.
예를 들어, 어릴 적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에게 끊임없이 인정을 요구하게 되고, 작은 무시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애초에 자신을 낮춰 관계에서 열등한 위치를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상대에게 부담이나 혼란을 주고, 결국 관계가 깨지며 또다시 "나는 버려질 수밖에 없는 존재야"라는 신념을 강화시킨다.
이렇게 대인관계 속에서 트라우마는 반복되고, 이 반복은 스스로를 예언하고 실현하는 구조가 된다.
또 다른 예로,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 가해자적 성향을 지닌 이와 관계를 맺는 것도 트라우마의 반복이다.
이것으로 고통을 다시 체험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정서적 반응을 재현하려는 무의식적 선택이다.
결국 관계 안에서 트라우마는 다양한 형태로 살아 움직이며, 사람 간의 갈등과 고통을 증폭시킨다.
4. 악순환을 끊기 위한 첫걸음은 ‘인식’이다
트라우마가 반복되는 심리적 악순환을 끊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그 반복을 인식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고통이 우연의 결과거나 타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볼 때 삶의 문제는 종종 내면의 상처가 외부와 상호작용하며 재현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트라우마의 반복을 끊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 패턴, 반응 방식, 대인관계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왜 항상 이런 일이 반복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비난이나 자기혐오가 아니라, 내면의 상처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과정이다. 또한 전문적인 심리치료를 통해 무의식적 패턴을 안전하게 탐색하고, 억압된 감정을 표현하며 통합하는 과정은 치유의 핵심이다. 반복을 멈춘다는 것은 단순히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다르게 반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트라우마의 악순환은 끊어낼 수 있으며, 그것은 인식과 용기, 그리고 치유를 향한 의지에서 시작된다.